이영진 헌법재판관(법학과 80) 퇴임
-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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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28
이영진(법학과 80) 헌법재판관이 17일 임기 6년을 마치고 퇴임했다.
이영진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헌법을 국가의 심장이라고 한다면, 헌법재판은 그 심장을 뛰게 하는 박동'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며 "헌법재판을 할 때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면서 사회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조정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헌법의 생명력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것이 재판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신속한 사건 처리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며 후임 헌법재판관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건의 심리와 처리는 더욱 정체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재판관들은 6년 내내 모두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했지만 워낙 많은 사건이 접수되는 탓에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헌법상의 기본권보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무분별하게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남소자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고, 검사의 기소유예처분 취소사건은 법원 등으로 관할을 이전하는 것이 필요하며 헌법연구관 증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퇴임사 전문>
이영진 헌법재판관
존경하는 재판소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지난 6년간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기를 마치면서, 여러분께 퇴임인사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1991년 3월 사법연수원생을 시작으로, 제가 33년이 넘도록 법원, 국회 그리고 우리 재판소에서 맡은 소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재판소장님과 동료 재판관님들, 연구관, 연구원과 사무처 직원들, 그리고 저의 가족과 지인 등 주위의 많은 분들께서,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아낌없이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6년 전 이 자리에서 재판관으로 취임하면서, “헌법정신이 국민의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스며들어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헌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드린 바 있습니다.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이와 같은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능력의 부족으로 약속드린 바를 모두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기에는 걱정이 앞섭니다. 다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라고 한 프랑스 혁명기의 대문호 발자크의 말을 항상 되새기면서, 재판관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퇴임사를 준비하면서 우리 재판소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헌법을 국가의 심장이라고 한다면, 헌법재판은 그 심장을 뛰게 하는 박동’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을 할 때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면서 사회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조정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여 헌법의 생명력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 재판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심리에 참여하였던 사건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몇 사건에 대해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비의료인의 문신시술업을 금지하는 사건, 시각장애인에 한하여 안마사 자격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사건과 같이 규범과 현실에 다소 괴리가 있는 경우에는 문신시술이나 안마사를 업으로 하고자 하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미흡한 면이 있을 수 있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본권이 상호 충돌하는 경우에는 기본권 모두가 최대한 존중될 수 있는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하여야 하는데, 대안제시에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선거운동기간 전 개별적으로 유권자와 대면해 말로 행하는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고하였고, 또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 대한 비방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을 선고하여, 공직선거에 있어서 선거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하였습니다.
그 밖에 낙태죄 사건, 국가보안법 사건, 변호사 광고규정사건, 대북전단 사건, 검사의 수사권 축소 등에 관한 사건, 탄핵 사건, 유류분제도 사건, 외국인의 보호시설 장기유치사건 등에서도 우리 재판소가 심도 깊은 논의를 하면서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헌법재판소의 운영과 관련하여 개선이 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어서 이 자리를 빌려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 격언과 함께 우리 재판소에 대해 신속한 사건처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오고 있습니다. 후임 헌법재판관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건의 심리와 처리는 더욱 정체될 것입니다.
‘정의는 지각을 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결석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신속한 재판을 위하여 재판관들은 6년 내내 모두 최선을 다하여 직무를 수행하였지만, 워낙 많은 사건이 접수되는 탓에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선 헌법상의 기본권보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무분별하게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남소자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또한 검사의 기소유예처분 취소사건은 법원 등으로 관할을 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불기소처분은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소유예처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재판관 전원이 심리에 참여하여야 하는데, 이는 헌법재판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크게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연구관 증원이 매우 절실합니다. 양적으로 접수사건의 수가 증가하는 것과 함께 질적으로도 보다 심도 있는 헌법적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사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향후 신속한 사건처리를 위해서는 헌법연구관을 획기적으로 증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저를 성원해 주셨던 많은 분들과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시고 계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재판소의 발전과 여러분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이제 저는, 그리운 곳에 풍경을 달아 두고 바람처럼 문득문득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하려 했던 정호승 시인의 시 ‘풍경달다’에서처럼 헌법재판소에 작은 풍경 하나 달아 두고 헌법재판소를 떠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2024. 10. 17.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 영 진
▷ 출처: 법률신문(https://www.lawtimes.co.kr/news/202143)